이 글의 목차
AI 이야기가 쏟아질수록,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새로운 모델이 나왔다는 소식이 올라오고, 누군가는 이미 업무에 잘 활용하고 있고, 누군가는 AI로 뭔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걸 보다 보면 "나도 빨리 따라가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른바 AI FOMO 같은 감정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결국 가장 현실적인 대응은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 직접 써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면 AI에게 알려달라고 하고, 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질문을 바꿔보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대화를 해보는 것 말입니다.
저는 여러 분야에 느슨하게 관심이 있는데, 그중 한 분야가 바둑입니다. 기력이 높은 건 아니고, 요즘은 유튜브로 주요 기전 해설을 종종 찾아보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알파고 이후의 바둑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AI 시대를 이해하는 데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도 그 생각을 정리해보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최강자로 꼽히는 기사는 신진서입니다. 그런데 신진서 역시 AI를 선생님 삼아 연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기사조차도, 이제는 AI와 함께 공부하고 AI를 통해 더 나은 수를 익히는 시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은 한참 뒤일 줄 알았는데...
한때 바둑은 인공지능이 쉽게 넘보기 어려운 영역처럼 느껴졌습니다.
체스나 장기에 비해 경우의 수가 훨씬 크기 때문에 단순 계산만으로 밀어붙이기 어려운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바둑만큼은 인공지능이 정복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그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습니다. 충격적이었던 건 단순히 인간이 졌다는 사실만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후에 AI 자체가 중요한 시기가 왔습니다
그 이후 바둑계에서는 AI 활용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초기에는 어떤 AI를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강한 AI를 자국 기사들에게 우선 제공하면서 우위를 만들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인상을 준 시기도 있었습니다.
적어도 한동안은 사용할 수 있는 AI의 차이가 곧 기력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도구 자체의 성능이 꽤 중요한 변수였던 셈입니다.
결국 남는 건 쓰는 사람
시간이 지나고 AI는 점차 상향 평준화되어 갔습니다.
같은 AI를 써도 누구는 더 잘 배우고, 누구는 더 잘 해석하고, 누구는 더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AI가 정답을 던져준다고 모두가 똑같이 흡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던 거죠. 결국 어느 시점부터는 차이를 만드는 것이 AI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신진서를 떠올리면 이 점이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신진서는 이미 세계 정상급 기사이고, 인간 기준으로는 누구보다 강한 기사로 인정받고 있는데도 여전히 AI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신진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최정상급 기사들도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현재 세계 1위가 신진서라는 사실을 보면, 강한 도구가 보편화될수록 누가 그것을 얼마나 밀도 있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마지막에 남는 차이를 만든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AI도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요
요즘 AI를 둘러싼 분위기도 비슷해 보입니다.
지금은 아직 어떤 AI를 쓰느냐가 중요해 보이는 시기입니다. 자연스럽게 어떤 모델이 더 똑똑한지, 어떤 서비스가 더 빠른지, 어떤 도구가 더 좋은 결과를 내는지 따지게 됩니다. 실제로 당분간은 그 차이가 결과물에도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질문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AI를 쓰느냐보다, 그 AI를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같은 도구를 써도 누군가는 막연하게 한두 문장 던지고 끝냅니다. 반면 누군가는 맥락을 설명하고, 원하는 결과의 기준을 주고, 나온 답을 검토하면서 다시 질문합니다. 결국 어떤 AI를 쓰는지보다 어떤 사용자가 쓰는지가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AI FOMO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대응은 직접 써보는 것뿐입니다.
최신 뉴스만 쫓아가며 불안해하기보다, 일단 하나를 골라서 직접 써보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 봅니다. 저도 OpenAI의 Codex를 우선 열심히 써보는 중입니다. 실제로 kwonhada.com을 만들고, kwonhada.com의 프로젝트를 구현해보는 데에도 Codex를 활용했습니다.
제미나이든 클로드든 GPT든 AI를 선생님처럼 써보고, 비서처럼 써보고, 같이 일하는 동료처럼도 써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AI가 무섭다"거나 "AI가 대단하다" 같은 막연한 감상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글쓰기 초안을 맡겨볼 수도 있고, 모르는 개념을 설명해달라고 할 수도 있고, 반복 작업을 줄이는 데 써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한 번 멋지게 써보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부딪혀보면서 어떻게 썼을 때 충분한 결과물이 나오는지를 익히는 일 아닐까요?
어쩌면 이미 시작된 변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AI는 많은 분야에서 선생님이자 비서이자 함께 일하는 동료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앞으로"라는 표현조차 조금 늦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많은 영역에서 그런 변화가 시작됐고, 사람들은 점점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바둑에서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도구 자체의 성능이 화제가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도구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질 겁니다.
여담으로 롤이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다른 게임은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입력 장치와 출력 장치를 사용하는 조건이라면 아직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바둑을 떠올려보면 그게 정말로 멀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끝.